내가 아는 역사(1) – 프랑스 종교 개혁,

그냥 여기 저기서 들은 얘기들을 정리하고자 “내가 아는 역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프랑스 종교 개혁을 계기로 인해 중세 유럽에 영향을 준 위그노에 대한 역사가 궁금하다.

1. 프랑스 종교 개혁(피의 역사)

어릴적에 주말영화나 설이나 추석 연휴 때 특별 편성되는 영화를 보거나 했었는데,

인터넷이 발달되고 무수히 많은 영화들이 각종 웹하드, 토렌트 기타 등등의 방법으로 알려지기 전에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서 영화를 봤었다.

그 어릴적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영화는 홍콩이나 프랑스에서 만든 영화들이다.

내가 뭐 영화 매니아는 아니였지만 쿵후가 나오는 홍콩 영화는 별로였고, 웃기지도 않는 코믹영화나 예술을 빙자한 고품격 영화가 난무했던 프랑스 영화가 그러했다.

그러던중, “여와 마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자벨 아자니 누나가 나와서 꼭 본건 아니다.ㅎㅎ

프랑스 영화인데 예술영화도 아닌 드라마였다. 중세 시대의 영화라는 것만 알고 봤었다.

나중에 알았다. 구교와 신교가 대립한…그리고 그 끝을 본 종교전쟁을 그린 영화였던 것이다.

그 날이 바로 “성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의 날이다.

프랑스 종교 개혁

2. 위그노가 유럽에 준 영향

이 당시 신교가 위그노들이 대부분이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낭트칙령 이후 프랑스의 위그노들은 주변국을 망명을 했다.

스위스, 네델란드, 독일…위그노는 좀 더 정리를 해봐야겠다.

그러고 보면 프랑스는 참…종교만 아니였으면…유럽 역사의 큰 획을 그었을 것 같기도 한데…

종교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위그노들이 중세 유럽에 끼친 영향을 알아보고 싶을 뿐이다.

내가 역사학자가 아니 때문에 이게 정확한 역사야~ 라고 얘기할 수 없지만…대부분 정설로 여겨지는 부분이.

스위스로 간 위그노들이 지금의 명품 시계를 만든 주역들이고,

영국으로 간 위그노들은 방직산업과 유리 제조업에 영향을 주었다고 되어 있다.

결국 종교 박해로 인해 떠난 그들이 유럽 각국에 정착하여 중세의 기술 발전에 많은 영향을 준것은 맞는것 같다.

종교는 신념을 갖게 되는데 이놈의 신념이란게 무서워서 그래서 서로 죽이게 되는 지경까지 가게 된다. 서로 사랑(?)하라고 종교에서는 가르칠텐데 말이다!!!

3. 역사 순으로 보면…

1562~1598
종교개혁의 파도는 프랑스에도 밀어닥쳤다. 프랑스의 구교와 신교 사이에 벌어진 위그노 전쟁은 30년 이상 계속되었고(1562~1598), 그 때문에 프랑스 봉건 제후의 힘은 약체화되었으며, 그것은 반대로 왕권 강화로 나타났다.

이 전쟁 중에 발루아 왕조는 단절되고, 신교인 위그노의 지도자였던 앙리 4세가 부르봉 왕조를 열었다.

1685년 낭트 칙령을 폐지하고 위그노를 탄압하였다. 낭트 칙령은 신교도들을 보호하는 장치였는데, 이 때문에 신교도인 위그노 25만 명이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1688년
명예 혁명(名譽革命)은 영국에서 1688년에 일어난 혁명이다.

의회와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 빌럼이 연합하여 제임스 2세를 퇴위시키고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로 즉위하였다.

이때 일어난 혁명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명예롭게 이루어졌다’라고 해서 명예혁명이라 이름 붙였다.

다음편에는 연산군의 은(銀)과 임진왜란을 적어 볼까 함 –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인데…골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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